훈장 추서부터 재단장까지, 고 최불암의 마지막 길에 담긴 의미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 추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
정부가 고 최불암에게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은 문화훈장 5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1등급 훈장입니다. 이는 반세기 넘게 텔레비전 드라마 성장기를 이끌고 대중에게 큰 울림을 준 고인의 공적을 기려 국가 차원에서 최고 예우를 갖춘 것입니다.
•
고인은 생전에도 아동 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연기자 분야에서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사례는 고 이순재와 고 안성기에 이어 고 최불암이 역대 세 번째입니다.

왜 예술인장이 아닌 복지재단장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나

•
이번 장례는 평생을 소외된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한 고인의 생전 뜻과 유족의 바람에 따라 복지재단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장례위원회 측은 문화예술계 단체 장례도 가능했으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고인은 1981년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을 계기로 결연을 시작한 뒤 40여 년간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도왔습니다. 또한 해외 8개국에 후원망을 구축하고 위기 청소년을 위한 제로캠프를 설립해 소년원 교화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
이러한 뜻에 따라 장례 미사를 마친 운구 행렬은 고인이 45년간 동행해 온 서울 중구 재단 본부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고인은 생전 약속대로 마지막 길에 재단 추모 공간을 둘러보며 평생을 함께한 나눔의 현장과 작별했습니다.

최종 장지로 파주 동화경모공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고 최불암은 언론인이었던 부친 고 최철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덕분에 실향민 2세 자격을 갖추어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동화경모공원은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실향민 전용 묘원입니다.
•
이 공원묘원은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과 그 직계 가족의 안식을 위해 1995년 문을 열었습니다. 문화계 동료와 시민들의 애도 속에 고별 절차를 마친 고인은 북녘 고향 땅을 바라보는 묘역에서 영원한 쉼에 들어갔습니다.

최고 영예인 금관문화훈장 추서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
정부가 고 최불암에게 추서한 금관문화훈장은 문화훈장 5등급 가운데 가장 높은 1등급 훈장입니다. 이는 반세기 넘게 텔레비전 드라마 성장기를 이끌고 대중에게 큰 울림을 준 고인의 공적을 기려 국가 차원에서 최고 예우를 갖춘 것입니다.
•
고인은 생전에도 아동 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으며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연기자 분야에서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사례는 고 이순재와 고 안성기에 이어 고 최불암이 역대 세 번째입니다.

왜 예술인장이 아닌 복지재단장으로 마지막 길을 배웅했나

•
이번 장례는 평생을 소외된 아이들을 보살피는 데 헌신한 고인의 생전 뜻과 유족의 바람에 따라 복지재단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장례위원회 측은 문화예술계 단체 장례도 가능했으나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
고인은 1981년 드라마 전원일기 출연을 계기로 결연을 시작한 뒤 40여 년간 전국후원회장으로 활동하며 국내외 소외 아동을 도왔습니다. 또한 해외 8개국에 후원망을 구축하고 위기 청소년을 위한 제로캠프를 설립해 소년원 교화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
이러한 뜻에 따라 장례 미사를 마친 운구 행렬은 고인이 45년간 동행해 온 서울 중구 재단 본부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고인은 생전 약속대로 마지막 길에 재단 추모 공간을 둘러보며 평생을 함께한 나눔의 현장과 작별했습니다.

최종 장지로 파주 동화경모공원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고 최불암은 언론인이었던 부친 고 최철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인 덕분에 실향민 2세 자격을 갖추어 이곳에 안장되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동화경모공원은 이북도민회중앙연합회 산하 재단이 운영하는 실향민 전용 묘원입니다.
•
이 공원묘원은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과 그 직계 가족의 안식을 위해 1995년 문을 열었습니다. 문화계 동료와 시민들의 애도 속에 고별 절차를 마친 고인은 북녘 고향 땅을 바라보는 묘역에서 영원한 쉼에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