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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악명 이근안 전 경감 사망…향년 88세
뉴스보이
2026.03.27.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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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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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0~80년대 대공수사관으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을 주도했습니다.
김근태 고문 사건 등으로 징역 7년형을 복역했고, 목사로 활동하다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 기사는 6개 언론사의 보도를 교차 검증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6개 언론사의 보도를 교차 검증하여 작성되었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이근안 전 경감이 지난 25일 88세로 사망했습니다. 이 전 경감은 최근 건강이 악화하여 서울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는 1970~80년대 내무부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활동하며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특히 '관절 꺾기', '전기 고문', '물고문' 등 가혹 행위를 통해 자백을 받아냈다는 의혹이 잇따랐습니다.
이근안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서울대 무림사건 등 다수의 공안 사건에서 가혹 행위를 주도했습니다. 서울대 무림사건 수사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민주화 이후 1988년 수배된 그는 11년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1999년 스스로 경찰에 출석했습니다. 이후 고문과 불법 구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00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이 확정되어 복역했습니다.
출소 후 2008년부터 목사로 활동하며 과거를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설교 중 자신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으며, 2012년 목사직이 박탈되었습니다.
이 콘텐츠는 뉴스보이의 AI 저널리즘 엔진으로 생성 되었으며, 중립성과 사실성을 준수합니다. AI가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뉴스보이 에디터들이 최종검수하였습니다. (오류신고 : support@curved-roa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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