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OP10#황자화통#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금성산#화약무기#안휴보나주 금성산 지뢰 찾다 출토된 '황자화통'…현존 최고(最古) 화약무기 확인뉴스보이2026.09.21. 15:15뉴스보이2026.09.21. 15:1528자 명문 판독과 과학 분석으로 입증한 한국 초기 화약무기 역사1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나주 금성산에서 출토된 국내 최고(最古) 화약무기 '황자화통' 실물과 분석 결과를 공개함.2해당 유물은 2023년 11월 군의 지뢰 탐지 중 발견됐으며, 길이 23.75㎝의 개인 휴대용 소형 화약무기임.3연구소는 무기 표면의 명문을 판독해 제작 시기인 '정사년'과 무게, 감독자 녹사 안휴보와 장인의 이름을 확인함.4제작 연대는 1377년 또는 1437년으로 추정되며 어느 쪽이든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기 유물임.5특히 세종대 개량 이전의 초기 화기 구조와 청동 주조 성분이 입증돼 초기 무기사 연구의 핵심 자료로 평가됨.국내 최고(最古) 화약무기 '황자화통' 발굴과 역사적 의미지뢰 탐지 중 발견된 소형 화약무기제작 연대가 두 시기로 좁혀진 이유초기 화약무기의 구조와 출토지의 역사국내 최고 화약무기의 가치와 향후 절차지뢰 탐지 중 발견된 소형 화약무기•전남 나주 금성산의 등산로 조성을 위한 지뢰 탐지 과정에서 9부 능선 암벽에 묻혀 있던 소형 화약무기 '황자화통'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2023년 11월에 발견되었으며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의 제원을 갖추고 있습니다.•손잡이 나무를 끼우면 전체 길이가 약 1.2m에 달해 개인이 직접 들고 쏠 수 있는 휴대용 화기였습니다. 무기 표면에는 손잡이 부분과 총부리에 걸쳐 총 28자의 글자가 음각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제작 연대가 두 시기로 좁혀진 이유•판독된 명문의 '정사년'은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설치한 1377년 또는 세종 대 화기 개량이 진행되던 1437년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명문에는 '정사년 12월'이라는 제작 시기와 함께 무게 1근 14량, 제작 감독자인 녹사 안휴보, 장인 석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명문에 적힌 '녹사'는 고려 말 군기감 등에 배치되어 무기 제조 실무를 맡았던 관직으로 국가가 무기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줍니다. 무기 명칭의 '황자'는 천자문 순서에 따라 소형 화기를 분류한 방식으로 당대 국가 무기 체계의 모습을 뒷받침합니다.초기 화약무기의 구조와 출토지의 역사•황자화통은 화약을 넣는 약통 내부가 둥근 형태로 제작되어 세종 대 일자형 개량 총통 이전의 초기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화약 폭발 압력을 높이는 나무 마개인 격목을 쓰지 않고 화약과 발사체를 함께 넣던 초기 화기 방식입니다.•성분 분석 결과 폭발 충격을 견디도록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조절한 전통 청동 주조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유물이 출토된 나주 금성산은 고려 말 왜구 침탈을 방어하던 군사 요충지이자 무기를 보관하는 군창이 운영되던 장소였습니다.국내 최고 화약무기의 가치와 향후 절차•황자화통은 기존에 제작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인 보물 '천자총통'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서는 현존 최고 유물입니다. 또한 출토지와 제작 정보가 불분명했던 기존 소장 유물들의 성격과 계열을 밝혀줄 결정적인 기준 자료가 되었습니다.•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국립고궁박물관 특별 공개와 방위산업전 전시를 통해 실물을 대중에 선보입니다. 연구소는 3년간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보물 지정 신청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지뢰 탐지 중 발견된 소형 화약무기•전남 나주 금성산의 등산로 조성을 위한 지뢰 탐지 과정에서 9부 능선 암벽에 묻혀 있던 소형 화약무기 '황자화통'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유물은 2023년 11월에 발견되었으며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의 제원을 갖추고 있습니다.•손잡이 나무를 끼우면 전체 길이가 약 1.2m에 달해 개인이 직접 들고 쏠 수 있는 휴대용 화기였습니다. 무기 표면에는 손잡이 부분과 총부리에 걸쳐 총 28자의 글자가 음각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제작 연대가 두 시기로 좁혀진 이유•판독된 명문의 '정사년'은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설치한 1377년 또는 세종 대 화기 개량이 진행되던 1437년 중 하나로 추정됩니다. 명문에는 '정사년 12월'이라는 제작 시기와 함께 무게 1근 14량, 제작 감독자인 녹사 안휴보, 장인 석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명문에 적힌 '녹사'는 고려 말 군기감 등에 배치되어 무기 제조 실무를 맡았던 관직으로 국가가 무기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했음을 보여줍니다. 무기 명칭의 '황자'는 천자문 순서에 따라 소형 화기를 분류한 방식으로 당대 국가 무기 체계의 모습을 뒷받침합니다.초기 화약무기의 구조와 출토지의 역사•황자화통은 화약을 넣는 약통 내부가 둥근 형태로 제작되어 세종 대 일자형 개량 총통 이전의 초기 구조적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화약 폭발 압력을 높이는 나무 마개인 격목을 쓰지 않고 화약과 발사체를 함께 넣던 초기 화기 방식입니다.•성분 분석 결과 폭발 충격을 견디도록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조절한 전통 청동 주조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유물이 출토된 나주 금성산은 고려 말 왜구 침탈을 방어하던 군사 요충지이자 무기를 보관하는 군창이 운영되던 장소였습니다.국내 최고 화약무기의 가치와 향후 절차•황자화통은 기존에 제작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인 보물 '천자총통'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서는 현존 최고 유물입니다. 또한 출토지와 제작 정보가 불분명했던 기존 소장 유물들의 성격과 계열을 밝혀줄 결정적인 기준 자료가 되었습니다.•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국립고궁박물관 특별 공개와 방위산업전 전시를 통해 실물을 대중에 선보입니다. 연구소는 3년간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국가지정문화유산인 보물 지정 신청을 추진할 계획입니다.더보기#황자화통#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금성산#화약무기#안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