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TOP10#황자화통#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국립고궁박물관#국제방산전시회#화약 무기나주 금성산 지뢰 탐지 중 발견된 '황자화통'…현존 최고 화약 무기 확인뉴스보이2026.09.21. 15:15뉴스보이2026.09.21. 15:15고려 말·조선 초 제작 추정과 명문 판독 성과1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가 나주 금성산 지뢰 탐지 중 발견된 화약 무기 '황자화통' 실물과 분석 결과를 공개함.2이 유물은 1377년 또는 1437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에서 발견된 화약 무기 중 가장 이른 시기 유물임.3표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무기 이름과 무게뿐 아니라 제작 감독관과 장인의 실명까지 구체적으로 확인됨.4분석 결과 주석 함량을 조절한 전통 청동 주조품이자 세종대 개량 이전의 초기 화기 구조를 띤 것으로 나타남.5연구소는 9월 23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유물을 공개하고 연말 국제방산전시회에서도 선보일 예정임.가장 오래된 화약 무기 황자화통이 밝혀낸 역사기존 보물 화기보다 100년 이상 앞선 이유는 무엇일까중앙 관청이 만든 화약 무기가 나주 금성산에 배치된 배경화통이라는 명칭과 초기 구조가 보여주는 기술적 특징기존 보물 화기보다 100년 이상 앞선 이유는 무엇일까•황자화통은 글자가 새겨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기존 화약 무기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선 유물입니다. 이전까지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보물 화기는 1555년에 만들어진 천자총통이었습니다.•황자화통의 제작 시기는 늦은 시점인 1437년을 기준으로 해도 천자총통보다 118년 앞서며 1377년일 경우 178년이나 빠릅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명문과 출토지가 분명한 이 유물의 보물 지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중앙 관청이 만든 화약 무기가 나주 금성산에 배치된 배경•전남 나주 금성산은 영산강 유역과 나주평야를 지키는 호남 지역의 핵심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축조되어 외적의 침입을 막는 주요 방어 거점으로 쓰였습니다.•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영산강 일대 곡창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했습니다. 국가는 이에 맞서 해안과 내륙의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산성에 군부대를 배치했습니다.•중앙 관청은 실무 관리가 감독하고 장인이 주조한 최신 화약 무기를 금성산성에 직접 보급했습니다. 당시 군대는 국가가 지급한 정예 화기인 황자화통을 산성 암벽 진지에 배치해 실전에 활용했습니다.화통이라는 명칭과 초기 구조가 보여주는 기술적 특징•황자화통은 고려 말 화통도감 설치 이후 천자문 순서로 서열화된 무기 체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개인 휴대용 화기입니다. 화약 무기 이름이 조선 전기에 총통으로 바뀌기 전의 초기 명칭인 화통이 유물 실물로 확인되었습니다.•이 무기는 세종 대에 발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량되기 전의 둥근 약통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청동을 주조할 때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조절하여 화약 폭발 시 무기가 부서지지 않도록 제작되었습니다.기존 보물 화기보다 100년 이상 앞선 이유는 무엇일까•황자화통은 글자가 새겨져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기존 화약 무기보다 최소 118년 이상 앞선 유물입니다. 이전까지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보물 화기는 1555년에 만들어진 천자총통이었습니다.•황자화통의 제작 시기는 늦은 시점인 1437년을 기준으로 해도 천자총통보다 118년 앞서며 1377년일 경우 178년이나 빠릅니다. 국가유산청과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는 명문과 출토지가 분명한 이 유물의 보물 지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중앙 관청이 만든 화약 무기가 나주 금성산에 배치된 배경•전남 나주 금성산은 영산강 유역과 나주평야를 지키는 호남 지역의 핵심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산성이 축조되어 외적의 침입을 막는 주요 방어 거점으로 쓰였습니다.•고려 말과 조선 초에는 영산강 일대 곡창지대를 노리는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했습니다. 국가는 이에 맞서 해안과 내륙의 방어 태세를 강화하고 산성에 군부대를 배치했습니다.•중앙 관청은 실무 관리가 감독하고 장인이 주조한 최신 화약 무기를 금성산성에 직접 보급했습니다. 당시 군대는 국가가 지급한 정예 화기인 황자화통을 산성 암벽 진지에 배치해 실전에 활용했습니다.화통이라는 명칭과 초기 구조가 보여주는 기술적 특징•황자화통은 고려 말 화통도감 설치 이후 천자문 순서로 서열화된 무기 체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개인 휴대용 화기입니다. 화약 무기 이름이 조선 전기에 총통으로 바뀌기 전의 초기 명칭인 화통이 유물 실물로 확인되었습니다.•이 무기는 세종 대에 발사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량되기 전의 둥근 약통 구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청동을 주조할 때 주석 함량을 10% 이내로 조절하여 화약 폭발 시 무기가 부서지지 않도록 제작되었습니다.더보기#황자화통#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국립고궁박물관#국제방산전시회#화약 무기